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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을 읽고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자살이다."
알베르 카뮈 - 『시지프 신화』

삶이 이토록 부조리함에도 왜 사람들은 삶을 이어갈까?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가?

이 책을 읽은 지는 1년이 훌쩍 지난 것 같습니다.
그치만 머리와 가슴에는 오래도록 남는 책이죠.

누군가 지나가는 말로,
'왜 사는 걸까?'라고 물으면

'행복하려고 사는 게 아닐까?'
가볍게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이 책은 어쩌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 이 대답을
완전히 뒤집어버립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목적은 생존이다."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 동물입니다.
행복, 사랑, 욕망, 사회성 같은 것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도구이며,
호르몬 작용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모두 '생물학적 기계'이죠.

그렇다면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요?

세상은 불평등하고, 고통이 넘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살아갑니다.

하이데거는 인간을 '내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은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에 던져졌고,
온갖 부조리를 당하면서도 그저 살아갑니다.

사르트르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라고 하며,

인간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기에, 살아가는 것이죠.

우리는 정말 스스로 선택하는가?

그런데 정말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걸까요?

미국의 신경내분비학자 로버트 새폴스키는
"당신의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자유의지'가 내린 결정처럼 보이는,

오늘 아침에 사 먹은 커피,
고심 끝에 적은 이 문장 모두가

뇌, 유전자, 환경, 문화 등이 쌓인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럼 우리는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맞는 걸까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것도,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도
결국 유전자, 환경, 경험과 호르몬이 만들어낸 결과라면 말이죠.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든다'는 생각조차
생물학적 기계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습니까?

어쩌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내 행복도, 사랑도, 가치도 모두 만들어진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경험합니다.

행복하면 기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따뜻하며
내가 믿는 것을 이루면 벅차오릅니다.

생존을 위한 보상 체계라고 해서
내가 느끼는 기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랑이 호르몬이라고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이 덜 소중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 선택이 유전자와 환경과 경험의 결과라도,
그 선택을 살아내고 경험하는 건 결국 나입니다.

삶에는 본래 정해진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경험에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삶의 거창한 목적을 찾아 헤매는 대신,
내게 주어진 삶에서 좋은 경험을 더 자주 만들어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요?

많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한번, 『행복의 기원』에서 서은국 교수는
행복을 목적이나 지속되는 상태로 보지 않습니다.

행복은 일상에서 느끼는 작고 구체적인 즐거움이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음식을 먹고,
웃고 떠드는 것.

그것만으로도 꽤 괜찮은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행복은 주관적인 즐거움과 기쁨을 일상에서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다.

서은국 - 『행복의 기원』

참고 자료